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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그때 여섯 살쯤 되었다. 그리고 여섯 살짜리가 기뻐할 수 있는 만큼 기뻐했다.

                                                           - 독일인의 사랑

 
 
책을 읽어 나가다가 문득 이 구절이 눈에 들어왔습니다. 하지만 어떤 말도 결국은 자기 연민으로 흘러버릴 거라는 예감은 이 구절에 대한 생각을 멈추게 합니다.

 

 저도 분명 여섯 살 때는 여섯 살짜리가 기뻐할 수 있을 만큼 기뻐했었습니다. 그런데 어느 순간부터 마냥 나이에 맞게 감정을 표현하지 않았습니다. 거기에는 사회적 환경이 중요합니다. 사실 제가 처한 환경을 운운하며 불운했다느니 하는 이야기는 하고 싶지 않습니다. 내심 그렇게 생각하고 있지만, 불우한 환경만 따지면 어디서건 제 경우보다 더 어려운 경우가 분명 많다는 걸 알기 때문입니다.

 

 대신 어떻게 감정 표현을 자제하고, 경우에 따라 표현을 해야 할 때에 대한 판단기준이 무엇인지가 궁금해졌습니다. 대개 어려운 환경은 적절한 조언자를 구하는 것에서도 인색하기 마련입니다. 어떻게 하면 제 상황에 맞게 판단하고 표현할 수 있을지 여전히 어렵고도 어렵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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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유병률 지음 | 웅진윙스 | 2009 6
 

 1. 책 나눔

  이 책 딜리셔스 샌드위치를 알게 된 건 순전히 블로그 Read & Lead덕분입니다. 주인장이신 buckshot님께서 나눔, 알고리즘’이라는 포스팅을 통해 책 나눔을 실천하셨는데, 그 떄 냉큼 신청해서 선물로 받은 것이 2009년 여름이었습니다.
 
그런데 그 때를 기점으로 논문과 일에 극심하게 찌들어 살게 되면서, 스스로 만족할 때까지 이 둘에만 집중하기로 하는 어처구니 없는 결정을 내리게 됩니다. 하지만 세상 살아가는 것이 두부 자르듯 한 순간, 만족스러운 상태로 갑작스런 변화할 수는 없는 노릇입니다. 그 이후로 여전히 논문과 일에 끌려 다녔고, 그러는 사이 이 책 딜리셔스 샌드위치를 포함해 쌓여 있는 여러 책에는 눈길을 제대로 줄 수 없었습니다.
 그러다가 최근 용기를 내어 다시 책을 집어 들어봤습니다. 그런데 재미있는 건, 이 책 딜리셔스 샌드위치’가 Prologue부터 그간의 제 일상을 비웃 듯, 제 생활은 잘못되었고 문화가 밥 먹여 줄 수 있다고 이야기합니다.

2. 놀라움과 진부함

정말로 두럽습니다

예전엔 통장의 잔고가 별로 없다는 사실이 두려웠습니다. 퇴직 후 길고 긴 노년을 무엇으로 버틸지 두려웠습니다. 그런데 일 년 남짓 맨해튼 여기저기를 헤매보면서 정말로 두려운 대상이 무엇인지 알았습니다.
 
 20년 넘게 한 극장에서 같은 뮤지컬이 공연되고 있다는 사실. 몇 시간을 서서 봐도 다 못 보는 어마어마한 양의 세계 명화가 한 곳에 모여 있다는 사실. 신문의 비즈니스 섹션보다 아트스타일면이 더 두꺼울 수 있다는 사실이 두려워졌습니다.

– Prologue 중에서

 문화가 밥 먹여주냐구요?

 그렇습니다. 오늘의 뉴욕이 결코 돈이 많아서 파리, 런던, 도쿄를 밀어 제친 것이 아닙니다. 뉴욕의 문화가 뉴욕의 경제를 만들었습니다. 그 경제는 다시 문화를 살찌우고 있습니다. 그 논리는 철저히 개인에게도 적용됩니다. 현재는 경제자신이 더 낳은 사람이 부자이지만, 미래는 문화자산이 많은 사람이 더 풍요하게 살 것입니다. 2의 산업혁명처럼, 지식경제사회가 문화비즈니스사회로 급속도로 전환되고 있기 때문입니다.
 
 더 이상 재테크 타령만 하고 있다가는 경제적으로도 한참 뒤쳐진 사람으로 낙인이 찍힐 수밖에 없습니다. 뉴욕의 금융사회나 로펌이 고객과 메트로폴리탄 뮤지엄을 통째로 빌려 그림을 보며 파티 하는 세상입니다. 문화를 모르면 경제도 모르는 시대입니다. 지금까지 경제적 능력이 문화적 능력을 좌우했다면, 앞으로는 문화적 능력이 경제적 능력을 좌우할 것입니다.

– Prologue 중에서

  
 
책을 보면서 저는 깜짝 놀았습니다. 비록 통장에는 잔고가 별로 없고 퇴직 후 긴 노년을 버틸 대책도 없지만, 이건 제게 당장 당면한 문제는 분명 아닙니다. 그런데 아직 닥치지도 않은 문제를 두고서, 제가 속해 있는 집단이 걱정하고 있는 모습에 저도 모르게 취해버렸습니다. 그리고는 인식하지도 못한 채 이러한 걱정의 행렬에 참여하고 있는 제 모습을 볼 수 있었기 때문입니다. 비록 속해 있는 조직이 제게 끝임없이 앞만 보고 달릴 것을 수시로 주문하지만 그래도 저는 다를 줄 알았습니다. 당장 제 색깔을 낼 수는 없지만 결코 잊지 않으리라 생각했습니다만, 스펀지에 잉크가 스며들 듯 저도 사회의 담론 안에서 허우적 거리고만 있었습니다.  

 그렇다고 이 책이 놀라움으로만 다가온 것은 아닙니다. 저자가 뉴욕에서 생활하면서 인식하게 된 우리사회의 취약점을 진지하게 풀어 놓은 것은 분명한 사실이지만, 급변하는 사회에서 2008년 여름에 출간 된 책 속의 문제의식이 2011년 가을까지 그대로 유효할 수는 없습니다. 이미 일본에 눌리고 중국에 치이는 샌드위치가 맛있는 샌드위치가 되기 위해서 문화적 요소가 가미되어야 한다는 사실은 이미 net cracker나 역(
) nut cracker라는 용어로 이 책의 저술 시점을 전후로 다양한 매체에서 여러 차례 지적되었습니다. 저 또한 Seri 보고서를 통해 여러 차례 비슷한 내용을 봤었습니다. 그래서 2011년 가을이 맞이 하는 시점에서 읽어 보기에는 아쉬움이 분명있습니다.

 
 
 3. 글쓰기
 

  우리는 지금 자본 집약의 제조 산업이 갖는 한계가 보고서가 아닌 현실에서 직접 볼 수 있는 시대에 살고 있습니다. 모바일 사업을 두고서 벌이는 애플과 구글 그리고 삼성의 싸움은 앞으로 다른 영역으로까지 넓혀 질 것이 자명합니다. 이러한 경향이 심화 될 수록 문화 산업은 책 속 저자의 주장처럼 문제를 돌파할 수 있는 하나의 좋은 돌출구가 될 수 있을 것입니다. 이러한야기에 저 역시 공감합니다. 그런데 저자는 컬쳐 비즈의 중요성을 역설하다가 갑자기 문화 비즈니스에 적합한 소통 능력에 대한 이야기로 관심을 옮겨가고 그 핵심은 글쓰기라고 단언합니다. 사실 글쓰기의 중요성은 이미 생각하고 있던 터라, 고개를 끄덕이면서 읽어나갈 수 있었습니다. 또한 글쓰기의 중요성을 강조하는 저자의 이야기 역시 나무랄 때가 없습니다. 하지만 문화 비즈니스를 통해 억눌린 샌드위치가 아닌 맛있는 샌드위치가 되어야함을 이야기하는 책의 전체적 맥락에서 보면, 내용이 갖는 유의미와는 별개로 아쉬움이 남습니다. 그 둘 사이를 매끄럽게 연결해줄 내용이 부족해 보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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