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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상중 지음 | 이경덕 옮김 | 사계절 | 2009 3

 

 고민군

 이것은 7년 전부터 친구들 중 몇몇이 부르는 별명이다. 생각하면서 살아가자고 해왔던 것이 친구들 눈에는 고민을 달고 사는 사람으로 보였나 보다. 냉소적인 느낌이 살짝 들기는 해도, ‘불평분자보다는 고민군이 낫겠다 싶어 별 말 하지 않았더니, 지금도 나는 가끔 고민군으로 불린다.

 

 얼마 전 우연히 지금 말하려는 책 고민하는 힘, 惱む力의 광고를 봤다.

 

재일 한국인 최초 도쿄대 교수 강상중이 쓴 삶의 방법론. 고민 끝에 얻는 힘이 강하다.

 

이 문구는 과연 재일교포로써 살아온 저자에게 고민은 어떤 것이었을까? 내가 지레짐작하는 그의 정체성과 관련이 있는 것일까? 하는 물음으로 이어졌고, 이렇게 이 책에 대한 관심이 시작되었다.

  

저자는 세계화와 자유화로 인해 촉진된 빠른 변화가 인간의 삶도 빠른 변화를 야기시키면서 부작용을 낳기 시작했다고 지적한다. 그리고 저자는 이러한 변화가 메이지(明治) 유신 이후 근대화로 인해 급변하던 일본의 모습과 비슷하다는 점을 들며, 이를 동시대를 살았던 나쓰메 소세키와 막스 베버의 인용을 통해 사회를 해석하고 삶의 의미를 찾으려는 의지로 논의를 확장시킨다.  

 

이 책에서는 일본의 대문호인 나쓰메 소세키(夏目漱石, 1867~1916)와 독일의 사회학자인 막스 베버(Max Weber, 1864~1920)를 실마리로 삼아 우리 모두가 지니고 있는, ‘고민하는 힘속에 담겨 있는 삶의 의미를 찾으려는 의지에 대해 생각해 보려고 합니다.     

                                         - 16

우리에게 큰 중압감을 주는 것 가운데 하나로 변화의 속도가 엄청나게 빠르다는 것을 지적할 수 있습니다.

1950년대 이후만을 놓고 볼 때, 경제의 개념과 사상, 테크놀로지 등은 유행이 바뀌는 것처럼 눈부시게 변해 왔습니다. ‘변하지 않는 가치와 같은 것은 거의 사라지고 말았습니다. 문제는 이런 상황에 맞춰 인간 또한 변해야 한다는 것입니다. 과거의 생각에 빠져 있으면 뒤처지고 맙니다. 지금의 상황을 다른 말로 하면 죽느냐 사느냐가 아니라 죽느냐 변할 것이냐로 표현할 수 있습니다.

 그렇지만 인간은 변하지 않는 가치를 찾으려고 합니다. 예를 들면 사랑이나 종교 등이 그렇습니다. 그러나 그 또한 변하지 않는다고 말할 수는 없습니다. 변화를 추구하면서 변화하지 않는 것을 찾습니다. 이렇듯 현대인은 상반된 욕구에 정신이 조각나고 있다고 말할 수 있습니다.                 

                                  – 18 ~ 19

 


 나쓰메 소세키는 문명이라는 것이 세상에서 말하는 것처럼 멋진 것이 아니라고 말한다. 오히려 그는 문명이 발전 할수록 인간의 고독은 깊어지고 구원 받기가 어렵다고 말한다. 그리고 자신이 가치관을 문학을 통해 보여준다. 막스 베버는 서양 근대 문명의 근본 원리를 합리화로 본다. 이것을 통해 인간 사회가 해체되고 개인이 등장해 가치관과 지식의 모습이 분화해 간다고 주장한다. 베버는 이것을 사회학의 모습으로 보여준다.

 

이 책의 목적은 삶의 의미를 찾으려는 의지의 추구라고 언급했다. 저자는 이것을 구체적인 9개의 명제로 풀어서 이야기한다.
  
 

- 나는 누구인가?
-
돈이 세계의 전부인가?
-
제대로 안다는 것은 무엇일까?
-
청춘은 아름다운가?
-
믿는 사람은 구원받을 수 있을까?
-
무엇을 위해 일을 하는가?
-
변하지 않는 사랑이 있을까?
-
왜 죽어서는 안 되는 것일까?
-
늙어서 최강이 되라

 

9가지 명제는 보는 바와 같이 누구나 살아가면서 가졌을 법한 것들을 구체적 기술한다.

 

그 중에서 늙어서 최강이 되라, 청춘은 아름다운가?, 그리고 나는 누구인가? 가 특히 내 관심을 끌었다. 먼저 늙어서 최강이 되라는 말은 나이가 들어서도 자신이 원하는 것에 도전 할 수 있어야 한다는 점을 저자의 경험을 통해 이야기해 준다. 청춘은 아름다운가? 하는 질문 역시 관심이 컸다. 나는 청춘이라고 부를만한 20대 초반 학부시절을 온통 우울함으로 보내서, 다른 사람의 청춘을 늘 부러워했기 때문이다. 사실 저자는 청춘은 나이가 아니라는 이상의 결론을 보여주지는 못한다. 그래도 책에서 표층적인 원숙함 대신 청춘적으로 원숙할 수 있다는 저자의 말은 내게 충분히 힘이 되어 주었다. 아울러, 자아라는 것은 타자와의 관계 속에서만 성립하기 때문에 사람과의 관계 속에서만 가 존재 할 수 있다는 이야기를 전해주는 나는 누구인가? 하는 물음에도 눈이 갔다.

 

보통 내게 철학서는 읽어도 이해하기 힘들어서, 나와는 거리가 먼 형이상학적 놀음일 때가 많다. 그런데 이 책의 경우는 그러한 두려움을 버리고 현실적 문제를 편안하게 기술해 간다. 그리고 책에서 계속 등장하는 나쓰메 소세키의 책을 접하고서, 이 책을 보면 저자가 이야기하고자 하는 것들을 더 생생하게 알 수 있을 것 같았다.

 

 

 

Tracked from Read & Lead at 2009/04/29 06:19 x

제목 : 대소, 알고리즘
부제: 난 주몽,무휼보다 대소가 더 좋다. ^^2006년, 드라마 '주몽'을 보면서 주몽의 활약상에 깊은 인상을 받는 동시에 주몽의 평생 라이벌로써 대립각을 날카롭게 세운 대소에게 왠지 모를 연민을 느끼곤 했다. 2008년, 드라마 '바람의 나라'를 보면서 무휼의 전쟁 신공에 주목하는 동시에 유리왕(주몽의 아들), 무휼(주몽의 손자)을 차례로 상대해 내는 대소의 기나 긴 활동기간에 적잖이 놀랄 수 밖에 없었다. 금와왕의 맏아들로 태어나 주몽에 ......more


Commented by Read&Lead at 2009/04/29 06:25
귀한 책 소개해 주셔서 정말 감사합니다. 삶의 의미를 찾는 과정 자체가 삶의 의미일 거라는 생각이 듭니다. 그래서 '고민'은 삶의 필수 자양분이 될 수 밖에 없는 것 같습니다. '고민'이란 단어를 이제 제 마음 속에 확실히 영입할 생각입니다. ^^
Commented by 고무풍선기린 at 2009/04/29 10:06
깊은 논의를 펼치는 책이 아니라, buckshot님의 기대에 미치지 못할 수도
있겠다는 걱정이 먼저 생깁니다.

그래도 조만간, '고민, 알고리즘'의 글을 볼 수 있을 것 같아
기대도 함께 됩니다.

덧말 감사합니다. ^^
Commented by 레이먼 at 2009/04/30 08:45
위의 글을 읽지는 않았지만, 책을 많이 읽으시는 분이군요.
저는 독서의 힘을 알고있는지라, 책을 읽는 분들의 내공을 믿습니다.
요즘 제가 책 읽는 것을 다소 멀리하였는데 님의 블로그를 통해 자극을 받고 갑니다. 오늘 하루 잘 보내세요/.
Commented by 고무풍선기린 at 2009/04/30 08:53
'레이먼'님의 블로그는 자주 방문하여 좋을 글을 많이 읽고 가곤 합니다.
방문해 주셔서 감사드립니다.

'레이먼'님 같이 뛰어난 블로거의 한 마디는
저를 춤추게 합니다.

덩실덩실~
춤추며 업무 준비를 시작하게 되어서
너무 즐겁습니다. ^^
Commented by Playing at 2009/05/05 09:42
안녕하세요~ 좋은 글 잘 봣습니다

워낙 상식이 부족하다고 생각해서 철학 교양과목을 매학기 수강하였었는데
학교 선배이시고, 힘들게 생활을 하시던 젊디 젊은 교수님의 말씀이 떠오르네요

"지금 너희들이 대학 4년동안 배워야 할 것은 단순한 학점이나 토익점수가 아니다
그런 건 앞으로 5년 길게 10년이 지나면 뼈저린 후회로 돌아오고,
더 늦게 찾아오는 후회는 이미 되돌아갈 수 없는 처지에 누구에게 하소연할 수 도 없게 된다"

"지금은 너희가 가장 아름답게 생각하는 게 무엇인지..?
무엇이 너희를 즐겁고 행복하게 만들어주고, 누구와 함께 있을 때 마음이 따뜻해지는 지 찾아가야 한다"

"선택의 기로에 섰을 때 쉽게 자신을 포기하며 주위의 선택들로 쫓아가지 말아라
그건 절대로 피할 수 없는 운명이며 숙명이다.. 지금 고민과 번뇌에서 벗어나기 위해 쉬운 선택을 해도
똑같은 상황이 매번 돌아오게 된다. 그 때 또 쉽게 선택하고.. 상황이 바뀌지 않고 다가오고.. 절대 피할 수 없다
니가 스스로 깊이 잇는 고민을 바탕으로 새로운 길을 제시할 때까지 그 똑같이 시간과 장소만 바뀌어서 반복된다"

결국, 하시고자 했던 말씀은
지금의 우리가 겪는 선택의 기로는 .. 깊이 있는 고민이 없으면 극복할 수 없는 걸 말씀하시고 싶었던 거 같습니다
인생에서 한 두 번 요행으로 넘겨도 위기의 순간은 언제나 찾아오게 되고, 스스로 극복하는 방법을 배우는 게 최선임을 알려드릴려고 매우 열정적으로 노력하셨던 젊디 젊은 교수님의 모습이 아직 생생하네요
(국내 철학교수님들의 처지는.. 어떨지 모르지만 저희학교처럼 공대위주의 대학에서는 찬밥도 안되는 거 같네요)
Commented by 고무풍선기린 at 2009/05/05 17:14
장문의 덧말 감사합니다.

공대생이신가봅니다. 보통 이공계 학생들에게 철학은 남의 나라 이야기가
되곤 하는데, 멀리 볼 줄 아는 혜안을 가지고 계시네요.

말씀하신 것처럼, 인문학을 통한 스스로의 성찰이야말로, 먼 훗날 자신의 인생을
후회하지 않도록해 주는 좋은 방향타가 될 수 있을 것 같습니다.

지금의 마음 잃어버리지 마시고, 인문학과 하시는 공부 모두에서
뛰어난 성과 이루시기를 기원합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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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노우에 에레노, 井上 荒野 지음 | 권남희 옮김 | 시공사 | 20093

  

 지금 이야기하려는 책 채굴장으로, 切羽へ 2008년도 일본 나오키상 수상작이다. 나오키 수상작을 처음 읽은 건 사쿠라바 가즈키의 ‘내 남자, 私の男’를 통해서다. 독특한 형식에 독특한 내용으로 책을 읽은 후 소설을 참 잘 썼다는 생각을 한동안 가졌다. 또 다른 나오키상 수상자인 미우라 시온의‘바람이 강하게 불고 있다 1 & 2, 風がく吹いている’를 읽으면서도 참 책을 잘 썼다는 느낌을 받았다. 그리고 지금 이야기하려는 책 채굴장으로, 切羽へ 2008년 나오키상 수상작이라는 광고문구만으로도 읽어 보고 싶은 생각이 가득했다. 

  

 책 속 이야기는 남쪽 섬에 사는 사람들의 잔잔한 일상 이야기다. 그 속에서 작중 화자 아소 세이가 이야기를 편안하게 풀어 간다. 세이는 섬에서 태어나고 자란 섬 사람이다. 잠깐 도쿄에서 생활하기도 했지만 화가인 남편 아소 요스케와 행복하게 섬에서 살아간다. 지금은 섬에 하나 밖에 없는 초등학교에서 양호 선생님으로 근무하고 있다. 게다가 그녀는 독거 노인인 시즈카 씨에게 케이크나 전갱이 같은 음식을 나누어 주며 돌보는 착한 마음씨를 가졌다. 그런 섬 사람에게 어느 날 갑자기 이사와 사토시라는 의뭉스러운 음악 선생님이 등장한다. 비밀이란 없는 섬에서 이사와는 독특한 존재다. 그의 행동은 섬사람들에게서는 볼 수 없는 것들 투성이다. 세이는 그렇게 이사와와 시즈카 씨, 세이의 학교 동료 교사 스키에, 그리고 스키에의 애인 본토씨 같은 사람들의 이야기를 차분히 풀어 놓는다.

 

이 책의 매력은 앞서 이야기한 차분함이다. 어떤 소설이던지 이야기의 절정에 이르면 작가는 이야기를 몰아치곤 하는데, 이 책 채굴장으로에서는 그런 모습을 전혀 볼 수 없다. 도대체 남편을 사랑하는데 그에게 끌린다는 선전 문구가 과연 맞는가 싶다 하지만 잔잔한 호수에 던진 돌멩이가 물결을 일으키는 듯한 느낌을 화자 세이를 통해 살며시 보여주는 걸 보면, 그 말이 틀린 것도 아닌 듯싶다.  

 

 

 작가는 1년간의 시간의 흐름을 월별로 이야기한다. 하지만 시간의 흐름을 생각하게 하기 보다는 편안한 일상의 모습을 잔잔하게 보여주는 느낌이다. 이는 이 책에서 볼 수 있는 간결한 문장 때문이다. 그래서 읽어 가기도 쉽고, 이런 문장이 잘 쓴 글이라는 사실을 떠올리게 해 준다. 이것은 원작자와 번역자의 탁월한 능력 때문이 확실하다.

 

책을 읽으면서 크게 두 가지가 궁금했다. 그 두 가지는 책에 등장하는 사투리와 제목의 의미다. 과연 사투리 사용의 의도는 무엇이었을까? 그리고 역자는 왜 그 사투리를 굳이 경상도 사투리로 번역 했을까? 하는 것들이 궁금했다. 또한 과연 채굴장으로라는 제목에서 저자는 무엇을 이야기하고 싶었을까 하는 점도 책을 읽고 난 뒤, 한참 동안 내 머리 속을 떠돌았다.

 

잔잔하고 차분하지만 맛이 일품인 채굴장으로읽어 보기를 과감하게 추..

 

 덧말. 동인문학상을 받은 소설은 읽지 않으면서 나오키상을 수상한 소설은 찾아 읽는다는 사실을 어떻게 받아들여야 할 지 고민이다. 내 문제인지, 저자의 문제인지 아니면 홍보를 제대로 못한 출판사의 문제인지 한참을 생각해봤다. 정말 좋은 작품이라면 동인문학상의 작품을 먼저 찾아 읽을 텐데, 왜 그럴 기회는 없었을지, 진짜 내 문제인지 잘 모르겠다.

 

 

Commented by 파라다이스 at 2009/04/28 01:38

저도 채굴장으로를 흥미롭게 읽었는데요. 사투리 번역은 필수적이었던 것 같아요. 세이가 음악 선생한테
말을 할 때는 표준어를 쓰고 그 외의 사람들에게는 사투리를 쓰는걸로 나오니까요. 전체를 표준어로
옮겼더라면 그런 구분을 느낄 수 없었을 것 같더군요. 전체적인 독후감이 저와 비슷해서 관심있게 읽고 갑니다.^^
Commented by 고무풍선기린 at 2009/04/28 02:32
작가는 세이가 쓰는 사투리를 통해 비밀이 없는 섬사람들과 아닌 사람을 무의식적으로 구분하는게 아닌가 싶었습니다.
제 추측이 맞는가 하는 점과 번역자는 다양한 사투리 중에서 왜 경상도 사투리를 골랐고, 거기에는 특별한 의미가 있는지
궁금했습니다.

저자처럼 간결한 문투로 포스트를 작성해보려고 했는데, 맞지 않은 옷마냥 오히려 어색해져버린 것만 같아 부끄럽습니다.

그리고 귀한 덧말 감사합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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