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살인자의 기억법 | 김영하 | ㈜ 문학동네 | 2013 8 5

 

 

1. 읽기 전

 

길고 길었던 학생 생활을 마치고 생계형 직업인의 길로 들어서면서 제 책 읽기는 멈추었습니다가뭄에 콩 나듯 희소한 성취의 즐거움과 가뭄에 가문 논에 물 대듯 바삐 움직이는 노곤한 일상 속에서 속에서 생계인의 희로애락(喜怒哀樂)을 반복하며 살아 왔습니다그러다가 갑자기 생활의 본거지를 중국으로 옮겼습니다그리고 4개월이 지났습니다. 시간의 흐름은 타지의 낯설음을 조금씩 허물고서 정신없던 노곤한 일상을  지루하고 무료한 일상으로 바꾸어 갔습니다 순전히 지루하고 무료한 일상에 대한 반동(反動)이 뜬금없이 책을 읽어야겠다고 생각하게 만들었습니다. 그렇게 서점 사이트를 들락거리다가 TV에서 흘려본 ‘알뜰신잡 (알아두면 쓸데없는 신비한 잡학사전)’에 출연한 소설가 김영하의 이름이 눈에 띄었고그래서 선택한 책이 바로 ‘살인자의 기억법’ 입니다.

 

2. 읽으며

 

 책의 이야기는 이름이 은희인 딸과 함께 사는 김병수라는 이름을 가진 한 노인의 이야기 입니다놀랍게도 김병수는 연쇄살인범입니다그의 첫 살인은 가족을 부당하게 대하는 아버지에 대한 항거에서 시작되었습니다그런데 당위에서 시작한 살인이 그의 내면 깊이 파고들어가 오랫동안 지속되는 쾌락으로 변해가자, 그 쾌락은 김병수를 연쇄살인마로 만들었습니다.

  

 그의 딸 은희는 마지막 희생자인 은희 엄마가 김병수에게 살해 당하기 전자신의 딸만은 지켜달라는 소원에 그러겠노라고 대답한 김병수의 유산입니다. 김병수는 은희를 입양해 25년간 키웁니다은희를 입양하고서 김병수는 교통 사고로 뇌를 다칩니다. 교통사고는 그에게 양날의 검입니다. 교통사고로 인한 뇌 손상으로 살인이 그에게 가져다 주는 희열을 사그라지게 만들어 30년간 지속된 연쇄살인이 멈추었지만, 가까운 사람부터 잊어버리는 심한 알츠하이머의 원인이 된 것 같기도 합니다.

 

요근래 김병수가 사는 지역에 연쇄살인 사건이 발생해 연일 뉴스를 장식합니다. 시간이 지날수록 알츠하이머로 그의 기억이 점점 더 허물어져 갑니다. 허물어진 기억으로 인해 김병수는 혹시 뉴스에 나오는 연쇄살인이 기억하지 못하는 자신이 저지른 건 아닌가 의심합니다. 그 때 김병수의 앞에 박주태라는 남자가 나타납니다. 연쇄살인범은 연쇄살인범을 알아봅니다. 김병수의 눈에 박주태는 느낌적인 느낌으로 알 수 있는 연쇄살인범입니다. 그런데 박주태가 자신의 주위를 멤도는 줄 알았는데, 다음 타겟은 자신이 아닌 딸 은희입니다. 병수의 눈에는 주태에게 잔혹하게 살해 당할 은희의 미래 모습이 보입니다. 그래서 박주태가 은희를 죽이기 전에 먼저 자신이 박주태를 살해하겠다는 계획을 합니다. 그런데 알츠하이머가 문제입니다. 박주태에게 맞서 은희를 지키기 위해 아무리 메모하고 녹음을 해도 그의 기억은 계속해서 허물어집니다. 아무리 간절하게 몸부림을 처봐도 허물어져가는 기억을 벗어날 수 없습니다. 그렇게 그의 간절한 몸부림은 책을 읽어 가는 독자의 머리 속에 각인됩니다. 그리고 작가의 탁월한 반전이 소설 속에서 등장하기 전까지 각인된 그의 모습은 변하지 않습니다. 사실 반전의 힌트는 처음에 등장하고 끝에도 등장하는 반야심경의 한 대목에서 숨겨져 있었습니다.

 

그러므로 공 가운데에는 물질도 없고 느낌과 생각과 의지작용과 의식도 없으며눈과 귀와 코와 혀와 몸과 뜻도 없으며형체와 소리냄새와 맛과 감촉과 의식의 대상도 없으며눈의 경계도 없고 의식의 경계까지도 없으며무명도 없고 또한 무영이 다함도 없으며늙고 죽음도 없고 또한 늙고 죽음이 다함까지도 없으며괴로움과 괴로움의 원인과 괴로움의 없어짐과 괴로움을 없애는 길도 없으며지혜도 없고 얻음도 없느리나. (11~12 , 148 )


색즉시공 공즉시색 色卽是空 空卽是色

있는 것이 없는 것이고 없는 것이 있는 것이면소설 속 김병수의 허물어져가는 기억도 결국은 애써 붙잡을 필요가 없는 허망한 것일 뿐입니다김병수의 기억은 과연 어디까지가 진짜이고 어띠까지가 망각에서 오는 착각일까요

 

3. 읽고서

 

먼저 책이 너무 쉽게 술술 잘 읽혀서 놀랐습니다오랜 시간 책을 손에서 놓고 있었음에도 작가가 펼치는 간결한 문장은 책이 술술 읽히도록 만듭니다. 간결하고 압축된 문장은이 ‘색즉시공 공즉시색 色卽是空 空卽是色’의 반전이 돋보이게 만듭니다.

그리고 책과 직접적인 연관은 없지만큰 틀에서 기억에 대한 이야기하고 있다는 점에서 저는 영화 ‘메멘토’와 이터널 션사인 ’이 떠올랐습니다. 다시금 메멘토이터널 션샤인을 봐야겠습니다.

마지막으로 책을 읽는 내내많지 않은 등장 인물과 정적이고 제한된 배경 그리고 주인공의 내적 갈등을 기반으로 이야기를 전개하는 모습에서 연극 소재로 적당하겠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그런데 다른 사람도 비슷한 생각을 했는지 2017년 배우 설경구를  주연으로 영화화 되었습니다관심이 있다면 책과 영화를 함께 비교해 보는 것도 재미날 것 같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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