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금 이야기하려는 책 ‘핏빛 자오선, Blood Meridian’은 구성에서부터 매우 독특한 책이었다. 매번 새로운 장(章)이 시작할 때마다 저자는 이야기의 소재를 순서대로 나열해 놓았기 때문이다. 순서대로 이야기의 주요 소재를 늘어 놓았으니, 이야기를 예상하려거든 해보라는 작가 당당함의 표현인지 혹은 순전히 독자를 위해 먼저 소재를 드러낸 것인지 알 길이 없었다. 아무튼 이 책은 이렇게 매우 독특한 구성을 가지고 시작되었다.
책은 이름을 밝히지 않은 열네 살의 소년으로부터 시작된다. 테네시에서 태어나 열네 살이 되던 해에 집을 가출하고는 정처 없이 세상을 떠돌다가, 소년의 발걸음은 서부로 향한다. 그리고는 비정규 군이 되어서는 ‘아파치 인디언’을 죽이러 다니지만, 그건 순전히 명목상의 허울일 뿐이다. 사냥의 대상이 비단 인디언뿐만 아니라, 멕시코 인이건 미국인이건 눈에 보이는 대로 사람을 죽이고는 죽인 사람의 머릿 가죽을 헤아려 그만큼 돈을 받는다. 그런 탓에 그들에게는 윤리니 도덕이니 하는 것들은 없다. 그저 살아가는 수단으로 사람을 죽일 뿐이며 작가는 그 속에서 인간이 가진 잔혹함과 폭력성을 아무 여과 없이 보여준다. 그래서 보통 미국인을 정의롭게 그리며 그들의 행위에 정당성을 부여하려고 애쓰는 지도 않는다. 이러한 내용을 무척이나 삭막한 시선으로 작가는 담담하지만 매우 풍부한 묘사를 통해 풀어나간다.
하지만 이 책이 그저 읽기에 좋은 것만은 아니다. 미학적(美學的) 문장이라고 일컬어지는 영어로 된 원문(原文)을 한글로 무리해서 옮긴 탓인지, 책을 읽어가면서 과연 역자(譯者)가 제대로 이해하고 옮긴 것인지에 대한 의문이 종종 들기 때문이다. 게다가 자주 사용하지 않는 단어의 사용이나 의성·의태어를 활용한 묘사를 통해 이야기를 풀어가는 것을 읽고 있노라면, 과연 원문이 어떻길래 영어 단어와 정확히 뜻을 맞추기 힘든 단어를 끌어다가 한글로 옮겼을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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